최근 2~3주간 내 인생에서 제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소개서 기획 기한이 맞물려 있는 상태에서 송년회 TFT, 동기 프로젝트 동시진행, 이번주는 회장님 인터뷰 및 바베큐 파티 준비에 ㅇㅌㅁ웨이 사진촬영 서포트. 거기에다 교회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들(DNA 셀 페스티벌, 아가서 강해, 셀인턴 교육 10강, 리바이벌 서퍼 인디자인 4주 강의, 아가서 삽화 작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집 도착 후 집 옆의 24시간 무인 로봇카페(스토랑트)로 이동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본가에서는 언제 오냐, 어디에 가야 한다 라며 계속적인 푸시가 들어오고 새벽기도도 깨우라는 셀리더와 전도사님의 애정 어린 푸시도 들어오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나보고 어쩌라고! 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거 너무 가학적이잖아요. 라고 말하고도 싶다.
불평 불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친듯이 일을 없애다가 약간 좀 번 아웃 직전인 것 같아 어젯밤 캄다운을 하면서 하나님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상황들을 허락하셨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빛나 언니가 보내준 남궁성일 목사님의 새벽 설교 말씀, 황성은 목사님의 11월 10일(월) 아가서 강해를 듣고 공통적으로 클릭됐던 키워드는 '신실함'이었다.
연초부터 "하나님이 마리아적인 기질만 있던 나에게 마르다적으로도 훈련시키시려나봐"라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매우 예언적인 말이었지 않나 싶다. 회사에서도 100을 요구하고 교회에서도 100을 요구하는 멘붕인 상황 속에서 내가 둘 다의 상황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임하는지 보시지 않을까?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제일 중요한 건 회사도 사역도 아닌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라는 것이다. (교회 사역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되면 좋겠지만 교회 사역을 바쁘게 진행하다 보면 내 영이 말라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교회 사역을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개인 예배와 기도, 말씀보는 생활만큼은 사수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와!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야 말로 엄청난 믿음과 신뢰가 요구되는 진짜 훈련인 것 같다.
주님, 저 이렇게 굴리셔서 나중에 어따 쓰실건가요.
저 크게 쓰임 받고 싶은데 그 크기에 맞춰가는 중이신거죠?
오, 고된 크리스천 지랭이의 여정이여. 지랭이의 천로역정은 이렇게 세상과 교회와 가정이라는 곳에서 다기능적으로 X빡세게 인도함 받고 있다. 힘내라 지랭.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지랭. 토닥토닥. 생각보다 강하고 생각보다 똑똑해. 그럼그럼 아멘아멘. 졸리다. 이제 자자.
17살, 주님을 처음 뜨겁게 만난 그 해 갔던 청소년 여름 캠프에서 "하나님께 인생을 드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메신저의 콜링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벌떡 일어났었다. 천 명 이상 참석한 중대형 컨퍼런스였는데 메신저의 콜링에 일어났던 아이들은 극소수였고 모두 쭈뼛쭈뼛 일어났다. 일어서자마자 주변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순간 부끄러워져 메신저의 축복 기도를 받는데 겉으론 대충 기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간절히 아멘아멘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인생을 드리겠다고 서원한지 벌써 11년이 지났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셨다고 생각한다. 늘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은 갈망이 있었고, '청년-선교-이스라엘'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가갈 방향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셨다. 현재는 교회에서 예비 선교사 육성 프로그램에 조인해 선교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아직 너무 너무 부족하기에 채워져야 할 것이 태산과도 같지만 이렇게나 작고 연약한 내가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감사하고 송구스럽다. 가끔씩 죄와 사단의 참소 앞에 넘어져 이런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17살 때 주님 앞에 서원했던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하신다. '긍휼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라는 진리가 참 맞다.
37명의 예비 선교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My Testimony
현재 함께 선교사를 희망하고 준비하고 있는 멤버는 총 37명이고, 팀 이름은 킹덤크루이다. 4인의 액팅 멤버(리더십)들이 벌써 우리의 테마곡을 정해왔는데 Elevation Worship의 My Testimony라는 곡이다. Elevation Worship은 하나의 성경 구절을 정해 작사/작곡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 이 곡은 누가복음 10장 1~21절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누가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를 따로 뽑아 복음 전파하도록 권능을 주시며, 70명이 복음을 전파하러 다닐 때 마귀가 견디지 못하고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듯이 곤두박질을 친다는 내용이다.
액팅 멤버들이 테마곡을 정할 때는 곡이 쓰여진 배경을 몰랐다고 하는데, 어쩜 이렇게 정확한 말씀을 주시는지 주님은 정말 신실하시다! 이사야 19장에 예언된 마지막 때의 '경배의 대로'를 예비하기 위해 순교적 헌신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선교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찬양을 통해 주신 말씀은 너무나 강력하고 정확하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언적인 말씀처럼, 킹덤크루 멤버들이 지나다니는 족족 마귀들이 두려워 도망가도록, 더 강력한 권능을 부어주시길 기도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마귀들을 잡아먹는 킹덤크루가 되길!
황성은 담임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 설교 시리즈 'Let's Go. Holy Spirit!'가 끝이 난 기념으로 온 교회 성도들이 영화 '바울'을 관람했다. 이 영화는 이전에 이미 개인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일용할 양식(오메가 교회에서 매일 하루 한 장씩 말씀을 연구하고 목사님의 멘토링을 받는 프로그램)을 통해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훑어보고 당시의 배경과 등장 인물들에 대해 이해하고 시청하니 더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었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초대교회와 알파와 오메가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끔찍한 대환난 속에서 세상의 모든 안락을 포기하고 총칼과 불, 사자 앞에서도 "예수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십니다."를 외쳤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니 지금 당장부터 언제 어디서나 본질사수를 하는 훈련을 단디 하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는 정말 휩쓸릴 수 있겠구나 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영화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한 지 약 30년 후인 AD 67년이다. 줄거리를 대략 설명하자면,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온 마을에 스스로 불을 지른 뒤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덮어 씌우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거짓 모함에 대한 책임으로 전국민적인 박해와 국가의 참혹한 처형을 당해야만 했는데, 밤에 산채로 불에 붙여져 가로등으로 쓰이거나 사자 밥이 되거나 강간을 당하거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극심한 불안과 고통 속에서 숨어 살아야만 했다. 주인공인 바울은 4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고 사형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실한 동역자 '누가'가 바울이 사형 당하기 전 바울의 선교여행을 모두 성경 문서로 남기고자 감옥으로 숨어들게 되면서 발생하는 스토리이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심한 고난을 피해 어떤 구역에서 함께 숨어 살았는데 이 구역의 리더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이다. 날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네로 황제의 광기에도 길거리의 고아와 과부를 섬기기 위해 도망가지 아니하고 무리를 위해 끝까지 남아 있었던 이들 부부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나는 대환난 속에서 내 이익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고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자신 없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영화 전반에 걸쳐 '사랑'에 대한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말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게 아니라, 이웃을 위해 모든 억울함과 고난을 감당해내며 결국 내 생명까지 산제물로 드릴 수 있는 그런 아가페 사랑. 먼저는 하나님께 그러한 사랑을 드리고 이웃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벌써 부터 두렵고 벅찬 마음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도 말로는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 분노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네로에게 복수하려는 무리들이 나온다. 누가 역시 바울에게 찾아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바울의 말에 순간적으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반발한다. 그러자 바울은 유명한 고린도전서의 사랑에 대한 구절을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누가는 바울이 말하는 말씀의 권위 앞에 순복하고 또 한번 뒤집어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랑의 길. 넘어지고 넘어져도 가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 그러나 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면류관은 그 어떤 것보다 영광스럽고 값질 것이다. 누가가 순간 인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했지만 말씀 앞에 또 다시 달려갈 힘을 얻는 장면은 연약한 나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때에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이구나 라는 것을 되새겼다. 체리피커 처럼 내가 원하는 구절만 골라서 믿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내 인생을 구겨 넣고 끼워 맞추는 삶. 내 자아를 순교하고 오직 말씀만이 내 삶을 인도하시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1.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인물, 장면, 대사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최근 황성은 목사님께서 '삶의 태도가 곧 영성이다.', '성실함과 관계가 마지막 때의 열쇠이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의사인 누가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삶의 모습에 대해 많이 묵상하게 됐다. 길고 험한 여정을 마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도착하자 마자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환자들을 치료하러 가는 누가. 스승인 바울의 상한 몸을 끝까지 치료해주는 누가. 로마 간수장의 딸을 밤새 치료하고 이른 아침이 되어 형제자매들이 순교하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누가... 누가는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삶의 모든 순간순간 성실하게 사랑을 실천한다. 심지어 자신의 원수를 위해서도.
1) 성실함(실력)이 곧 영성.
의사 누가는 최고의 의사였다. 로마 제국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한 간수장의 딸을 누가는 하룻밤만에 치료하는데에 성공한다. 쉬지 않고 연구하고 수백명의 환자를 수술하고 연마하면서 최고의 실력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최근 내가 들은 충격적인 말씀이 있다. 교회 성도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교회가 지성소이고 세상이 성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큼 세상에서 열심을 내고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는 성소이고 세상이 지성소이며, 교회에서 힘껏 예배하고 믿음과 힘을 얻었으면 세상에다가 그 이상의 것을 쏟아 내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의 믿음에 대한 기준을 완전히 흔들어놓는 말씀이었다.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아, 나 잘하고 있구나.'라고 자위해왔던 내 태도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라도 직장 내에서 누가처럼 흠잡을 것이 없는 성실함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되었다.
2) 내 자아가 아닌 오직 말씀.
누가는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순간 순간 올라오는 인간적인 마음들과 씨름했을 것이다. '쉬고 싶다.', '저 원수의 딸 그냥 저대로 죽어버리면 좋겠다.' 등등. 하루에도 수백번씩 육체의 연약함을 쳐내며 씨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마다 바울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보기를 상상하며 끝까지 복음을 실천했을 것 같다.
내 육신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알며 이해가 안되더라도, 이것 만큼은 실천할 수 없을지라도, 오직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음으로 순종했던 누가.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 보기에 떳떳하게 실천하고 있는 말씀이 단 한 구절이라도 있을까?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단 한 순간도 교만할 수 없는 지독한 죄인임에 틀림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말씀 앞에 내 모든 자아를 구겨 넣는 그런 삶의 태도가 내 안에 깊이 새겨지길 기도했다.
2.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예수님께서 어느 곳으로 보내시고 우리에게 어떤 사역을 맡기셨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당장 나를 보내신 곳이라고 한다면 나의 가정, 나의 교회, 나의 직장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딸의 모습과 키퍼슨으로서 가정제단을 쌓는 중보 사역인 것 같다.
교회에서는 중보팀과 예배팀으로서 교회를 사랑하고 성실함과 열정으로 정확히 있어야 할 시간과 자리에 있는 것?
직장에서는 꾀 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일하고 성과를 내며 상사와 동료와의 관계를 잘 쌓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지 않을까.
최근에는 내 삶 전반에 있어서 모든 양들에게 '바이블 멘토링'을 할 수 있는 메신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티칭이 오직 말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찌르기만 해도 말씀이 툭툭 튀어나오고 성경 안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기준들도 말씀의 정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명철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가 되고 싶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배경에는 먼저 성도들의 '말씀'에 대한 역량을 준비시키기 위해 계속적으로 일용할 양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있다. 또한 최근 어떠한 계기로 '하나님께서 비진리에 대항하여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탬버린과 같은 자로 세우시길 원하시며 그러한 훈련의 과정들을 주실 것이다.' 라는 예언의 내용을 듣게 되면서 부터이다.
청년과 다음세대, 선교, 엔타임 메신저!
지금 내 모습을 봤을 때는 거의 뭐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열심히 목사님을 따라가고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이 점프시키시겠지 싶다. 주님만 믿씁니다...
3.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영화를 통한 신앙의 결단을 나눠봅시다.
지금까지 주저리 주저리 썼지만, 요약하자면 '삶의 예배'와 '말씀 연구 및 실천'인 것 같다.
이전에는 신앙의 결단이라 하면 거창한 영적인 목표들을 세웠었는데, 그것들을 얻기 전까지 당장 게으름을 버리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삶의 예배가 돌파되었을 때 더 큰 차원의 비전을 열어주실 주님을 기대한다. 그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통해 말씀을 계속적으로 연구하려 하고, 매일의 삶에서 일용할 양식을 통해 얻은 액티비티를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겠다.